• 기자명 이현민 대중문화평론가
  • 문화
  • 입력 2024.03.21 15:03
  • 수정 2024.03.26 08:38

류준열과 한소희, 혜리...팬들도 할 말은 있다

[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 하기]
열애중 카리나, 팬들의 공격에 '사과'
한소희, '환승연애' 비난속 열애 시작
팬들은 왜 뒤틀린 감정을 쏟아낼까
'덕질'시키고 '유사연애' 감정 키운 건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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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열애에 뒤틀린 팬심

연예인들의 열애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K-콘텐츠가 글로벌화하면서, 이제는 전 세계가 한국 연예인의 연애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분위기다. 3월만해도 벌써 두 커플이 열애 공개와 동시에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찌보면 단순한 20~30대 청춘 남녀의 사랑일 뿐인데, 그들의 연애가 왜 각종 논란으로 시끄러운 것일까? 연예인들의 열애를 통해 K-콘텐츠 산업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열애설을 인정한 에스파의 카리나(왼쪽)와 배우 이재욱. 이에 팬들은 항의시위를 벌였고, 카리나는 사과 편지를 써야 했다. 사진=연합뉴스
열애설을 인정한 에스파의 카리나(왼쪽)와 배우 이재욱. 이에 팬들은 항의시위를 벌였고, 카리나는 사과 편지를 써야 했다. 사진=연합뉴스

소속 아이돌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열애를 인정하자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주가가 폭락해 하루 사이 시총 660억원이 증발했고, 열애 반대 트럭시위까지 등장했다. “카리나,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니”등 멘트의 트럭시위는 사실 오싹한 기분까지 들게한다. 결국 카리나는 SNS를 통해 자필편지로 ‘열애’에 대한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외신은 “압박 심하기로 악명 높은 K팝 산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K팝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배우 류준열-한소희가 대신했다. 결이 조금 다른 연애사이지만, 열애, 해외 팬덤이라는 공통 키워드, 그리고 현재 가장 핫한 여자 연예인으로 평가받는 한소희의 열애라는 측면에서 논란의 핵심은 비슷하다.

20~30대 젊은 남녀가 연애를 시작하자 마치 가까운 친인척이 연애를 시작한마냥 온 국민이 한마디씩 거드는 분위기다.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된 대중문화, K-콘텐츠 산업의 단면이다. 두 커플의 열애로 인해 발생한 논란의 본질이 조금 다르긴하지만, 두 건 모두 국내 팬들의 연예인들을 향한 높은 판단기준이 만들어낸 뒤틀린 팬심이 작용하고 있다.

카리나의 경우,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연애에 사과를 해야했고, 한소희는 자신의 열애 시작을 비난으로 물들여야했다. 모두 도(度) 넘은 사랑을 팬심으로 가장하여 연예인에 대한 사생활 침해를 하는 측면이 크다. 그렇다면 팬들은 그들의 사생활을 내세운 연애에 그저 응원만 해야하는 것일까? 팬들이 이렇게 행동하는데는 사실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열애설을 인정한 배우 한소희(왼쪽)와 류준열. 사진=연합뉴스
열애설을 인정한 배우 한소희(왼쪽)와 류준열. 사진=연합뉴스

성숙한 팬 문화의 딜레마 

대중문화 산업은 환상을 판다. K-콘텐츠 산업은 이런 대중 산업의 본질을 가장 영리하게 이용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는다. K-팝의 도제식 육성 시스템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이 시스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점은 많다.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팬덤이 원하는대로만 행동해야만 하는, 그릇되고 뒤틀린 소유욕이다. 팬덤 사이에 ‘내 가수’, ‘내 연예인’이라는 말은 일종의 관용어다. “나의”의 의미는 사전적으로 이미 소유를 내포하는 말로, 팬덤이 희생하는 만큼 ‘내 연예인’도 팬덤의 요구를 들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무언의 약속이 결렬될 때 팬은 가장 악랄한 '안티'가 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유사연애'의 감정을 자극하여 콘텐츠 비즈니스의 몸집을 불려왔다. 연예계는 팬들의 유사연애 감정을 자극하여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팬층을 만든다. 오직 팬들에게만 '나의 사랑을 준다'는 식의 마케팅은 팬덤 문화의 상징이자 구심점이 되고, 이를 통해 팬들은 자발적으로 해당 연예인의 충성도 높은 팬이 된다. 충성도는 수많은 ‘덕질’을 통해 증명되는데, 사비를 들여 해당 연예인의 광고까지 하다보니 팬과 연예인의 상생 아닌 상생은 꼬여버린 실타래처럼 문제가 곧 원인이 된다.

팬들에게 갑작스럽게 자유를 침해하거나 집착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이유도, 연예 산업이 이러한 마음을 역이용하여 성장했고, 지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류준열의 ‘새’ 연애도 사실상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메가 히트 드라마를 통해 탄생한 커플(류준열-혜리)에 대한 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애정에 대한 보답이 망가졌다는 배신감이 작용했다. 그들은 7년의 연애이지만, 그 드라마를 사랑했던 이들은 예의를 상실한 잡음에 분노를 표출한다. 한소희의 대응과 관련한 일련의 논란은 차치하고 말이다.

성숙한 팬 문화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대중에게도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미성숙한 팬문화라고 비난하기엔, K-콘텐츠 산업의 본질이 그러하다. K-콘텐츠가 글로벌화 될수록 한국 팬덤 문화의 정체성이 해외 시장에서 더 많이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갑작스럽게 '팬덤은 성숙해져라!' 라고 훈계 말씀을 들이대기엔 그동안의 비즈니스 성장 과정을 무시할 수가 없다. 성숙한 팬 문화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 이현민은 대중문화평론가, 한중 콘텐츠 연구자로 로앤컬쳐 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북경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공기관 정책연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문화 연구의 이론과 실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대학에 출강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 <입체적 한중 대중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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