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
  • 과학
  • 입력 2024.03.20 10:33
  • 수정 2024.03.24 15:05

한반도 애그플레이션, 대처방법 바꿔야 한다

[김해동의 기후위기와 세상만사]
재작년 12월부터 한반도에 '진짜' 이상기후
사과꽃 조기 발화로 꿀벌 수정 못받아
고(高)수온 이어져 수산물 생산량도 급감
'이상기후 완화되리라'는 기대 접어야
불합리한 경매제도도 가격폭등 부채질
정부와 농협, 생산·유통에 적극 개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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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애그플레이션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Agriculture(농업)과 Inflation(물가상승)의 합성어로 먹거리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일반 물가가 따라서 상승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농산물의 생산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에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애그플레이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애그플레이션 문제가 전 지구적인 위협으로 크게 부각된 것은 1993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1993년 여름에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이상 발달하여 극심한 냉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쌀 생산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해에 미국에서도 극심한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여 흉작과 다양한 물적 피해와 인명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때의 기후재해를 피해 규모를 따서 ’Billion Dollars Disaster(수십억 달러 재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93년 봄에 미국에서 이상저온이 발생하고, ’역대급 저기압‘이라고 불린 강한 저기압이 미국 동부 해안에 강한 토네이도와 기록적인 강풍을 만들었습니다. 봄에 60~120㎝에 이르는 폭설이 내린 지역도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재산피해가 50억~60억 달러에 이르렀고, 사망자도 270명이나 발생했습니다. 여름철에도 미국의 기상재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중부와 중서부에 장기간에 걸쳐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발생했고 재산피해 약 210억 달러, 사망자 48명을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일조 조건도 최악이었습니다. 남동부 지역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극심하여 농작물 피해가 10억 달러 내외, 사망자가 16명 발생했습니다. 가을에는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서 건조현상과 강풍이 이어져서 농작물 피해와 함께 대형 산불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993년의 이상기후는 동아시아와 북미대륙 만이 아니라 북반구 곳곳에서 기승을 부렸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을 가져오고, 그것이 식량가격 급등을 불러일으켜 인간 삶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구촌을 휩쓰는 이상기후가 2007년에 재차 지구촌을 강타하였고,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식량 안보문제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기후위기로 인하여 기후의 극단성(extreme), 급변성(suddern) 그리고 특이성(abnormal)이 해가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농산물 가격의 급등현상이 일상화되어가고 있고, 최근에는 농산물 수출국들이 생산량 급감으로 수출자체를 중단하는 사태도 되풀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21세기 들어 한반도에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고온 강수가 반복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세기 들어 한반도에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고온 강수가 반복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애그플레이션

우리나라는 농어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산업화 드라이브를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에 80%를 넘었던 곡물자급률이 이제는 20%를 밑돌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인구 5천만이 넘는 나라로 곡물자급률이 20%에 미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26% 내외)을 제외하면 곡물자급률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하고, 농민의 평균연령은 67.7세에 이르며 농가의 소득수준도 낮습니다. 농가의 소득 하위 20%의 연간 수입은 800만원을 밑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농촌의 취약성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에 중대한 걸림돌로 이어집니다. 지금의 애그플레이션 발생에 농민들의 고령화가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는 지적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외 없이 기후위기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고, 그로 인한 농산물의 가격 폭등과 수급 불안정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흉작에 따른 수입 불안정으로 한계 상황으로 몰리고 있고, 도시의 소비자들은 먹거리 물가 폭등으로 고통 받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농산물의 잘못된 유통구조는 농수산물의 가격 급변을 더욱 부채질하여 농어민과 도시 소비자들을 모두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행정당국으로부터 농산물 경매 전권을 부여받고 있는 도매시장 법인체제로 거래가 독점되고 있는 상황이 농산물 가격 변동성 증폭의 원인이라는 지적입니다. 잘못된 유통구조로 인하여 공급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가격이 급등하고, 출하량이 많아지면 가격 급락으로 농민들이 출하를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는 사태가 이어져왔습니다. 이를 고쳐가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외면해온 역대 정권들의 책임이 큽니다.

지난 1년간 우리나라의 기후는 어땠나?

금년 3월 초에 나온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전년 동월 대비 사과 71%, 배 61.1%, 귤 78.1% 오르는 등 과일가격 전체로 41.2%나 급등하였고 파 50.1% 등 채소류도 많이 올랐습니다. 농산물 가격 상승에 다소 묻혀 있을 뿐 마른김을 시작으로 각종 수산물 가격도 급등했습니다. 원인은 공급부족에 있는데, 그만큼 지난 1년 동안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기후가 농수산물 생산에 불리하였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의 기후는 어땠을까요?

기상청이 정리한 계절기후를 바탕으로 2022년 12월부터 금년 2월까지 나타난 우리나라의 기후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22년 12월부터 시작된 겨울기후의 가장 큰 특성은 기온 변동폭이 역대 가장 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철에 때아닌 호우특보가 내려지기도 하였습니다. 2023년 봄철은 역대 가장 높은 고온이었습니다. 봄철 고온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3월의 높은 온도였습니다. 3월의 월평균기온은 평년에 비하여 3.3℃나 높았고 일조량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과수나무의 이른 개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른 개화는 꿀벌의 수정작용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흉작으로 이어집니다. 만약에 꿀벌이 수정작업을 해주지 않는다면 전 세계 사과생산량은 90%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근래 매년 봄철이 끝나갈 때면 양봉 농가의 꿀벌 채취량이 대폭 줄었다는 기사가 연례행사처럼 보도되고 있는데, 이것은 꿀벌의 과수 수정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지난 2023년 1월 당시 한반도의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을 설명하는 그래프.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3년 1월 당시 한반도의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을 설명하는 그래프. 사진=연합뉴스

이어 2023년 여름은 전국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 높았고 강수량이 291.1㎜나 많았습니다. 장마 기간도 길었고 장마철 강수량도 역대 3위에 해당할 정도였습니다. 여름철에 과수가 요구하는 일조 조건이 매우 나빴던 겁니다. 이어 2023년 가을은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고온이었습니다. 특히 9월의 기온은 역대 1위였습니다. 9월엔 기온이 매우 높으면서도 일강수량 극값을 경신하는 지역이 다수 나올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가을철 고온은 11월에도 여전하였습니다. 11월 중순까지도 일 최고기온이 29℃에 이르렀습니다. 사실상의 여름기후였습니다. 가을철의 고온현상도 과수 생산에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해수온도는 3월부터 역대급 고수온이었는데 연간 계속 고수온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고수온은 김, 미역, 다시마 등의 해조류에 치명적입니다. 부산의 유력 지역 일간지는 9월 초에 ’고수온에 기장 미역 씨 말랐다. 전국 생산량도 90% 급감‘이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해조류가 사라지면 이를 서식 공간으로 하는 어패류도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수산물 생산 감소와 가격 폭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이번 겨울은 강수량이 평년보다 2.7배나 많았고 강수일수도 역대 가장 많았습니다. 폭설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하우스 재배로 공급되는 겨울 채소와 과일 생산량을 떨어뜨렸습니다. 지난 1년 동안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기후는 적어도 농수산물 생산엔 위기요인 그 자체였던 셈입니다.

사진=JTBC 뉴스룸 캡쳐
사진=JTBC 뉴스룸 캡쳐

기후위기 시대, 올바른 먹거리 수급 대응책은?

지금과 같은 애그플레이션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정부 관계자는 올해 기후가 농수산물 생산에 우호적으로 나타나서 공급이 원활해져야 해소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호조건의 기후를 기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애그플레이션 문제가 가져올 고통을 줄이려면 올바른 대책(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정부가 대책으로 들고 나오는 수입 농산물 확대가 답이 되어선 안 됩니다. 농수산물 가격 폭등의 해법으로 수입확대를 택한다면 기후위기로 심각한 흉작을 내는 농민들의 소득은 더욱 쪼그라들어 한계로 몰리게 됩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수산물 생산 불안정은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수입해올 물량 자체가 없어지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됩니다.

농가소득을 보전하면서도 도시소비자들을 배려하려면 정부가 생산과 유통에 개입을 확대해야합니다. '기후지수 보험제도'를 도입해서, 기후재해에 따른 농가소득을 보전해야 합니다. 농수산물의 유통에 농협의 개입이 크게 확대되어야 합니다. 출하기에 구매를 늘려서 가격 폭락을 막고 도시민들에게 안정적인 공급자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지금처럼 민간에 유통을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기후위기 시대에 농민과 도시소비자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시장만능주의는 기후위기 시대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수 품목은 AI반도체나 2차 전지가 아닙니다. 매일매일 먹어야할 먹거리가 우선입니다. 농수산물도 상품으로만 바라봐온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바꿔야합니다. 지금의 애그플레이션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 김해동은 계명대 지구환경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행정안전부 기후재난대응 T/F 위원도 겸하고 있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 교육과를 졸업하고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기상청 기상연구관을 역임했으며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대구시민햇빛발전소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기후위기과학특강>, <내일 날씨는 어떻습니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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