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양소희 프리랜서 기자
  • 글로벌
  • 입력 2024.03.11 18:22
  • 수정 2024.03.18 11:02

닛케이 신기록? 일본 젊은이들, 무관심한 까닭

[양소희의 일본을 보는 젊은 시각]
투자 소득에 높은 세금 매기는데 부담 커
전문적 투자 공부하는 젊은이 별로 없어
'투자로 돈 벌고 노후 대비' 생각 안해
쉽게 대출받아 집 사는데, 부동산 투자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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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선호도 높은 일본

“투자를 해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와세다대 졸업반인 미사키(가명)는 투자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한국 젊은이들중 많은 이들 사이에 월급 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며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반면 일본 젊은이들은 아직까지 월급을 아껴 저축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국내는 대학마다 투자 동아리가 활발히 운영되고 일각에서는 2030이 ‘투자 중독’ 이라고까지 불리는 세상이다. 여기에 지난 수년간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가 늘어나고, 암호화폐 상승 랠리에 따른 투자가 더욱 활발해졌다. 일본은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일본은 지진 등 빈번한 재난과 높은 고령층 인구 비중 탓에 전통적으로 현금 자산에 대한 신뢰와 선호가 높은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해 일본인들 금융자산 전체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2.5%에 달했다. 미국이나 유로권이 10~30%대인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게 높다.

일본 연령대별 투자 참여 인구 비율. 세대별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젊을수록 낮다. 자료 = 노무라 자산운용사
일본 연령대별 투자 참여 인구 비율. 세대별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젊을수록 낮다. 자료 = 노무라 자산운용사

그렇다면 현재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 졸업반 20대 젊은이들, 입사 직후 경제적으로 투자가 가능해진 30대도 마찬가지일까? 최근에는 투자자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상황은 어떨까? 현지인들을 인터뷰하며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주식투자 공부에 관심없어

인터뷰에 응한 일본인 젊은이들 네 명 중 세 명은 “주변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또래 지인이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암호화폐 관련 업계에 근무중인 켄(가명)만이 “주변에 꽤 있다”고 밝혔으나 그마저도 “본가인 후쿠시마 지역에 가면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다”며 “회사나 금융권에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투자를 잘해 말 그대로 ‘대박’이 난 2030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고, 저축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분위기가 꽤 흔하다고 이야기하자, 이들은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사키 씨는 “전문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곳이 없기 때문에 따로 관심을 갖고 공부하지 않으면 투자해도 손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한국 젊은이들은 제각각 인터넷이나 여러 커뮤니티, 금융기업들의 리서치 보고서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고 하자 “상경계열을 전공하거나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며 신기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물론 일본도 학교에서 투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가르친다. 고등학교 사회과목 중 하나인 ‘공민(公民)’에 관련 교육 내용이 담겨있긴 하다.

일반 기업에 재직중인 소타(가명) 씨는 “그때 주식이나 투자에 대해 배우긴 했고, 실제 투자를 해본 적도 있지만 어디까지 ‘겉핥기’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투자에 관심을 갖는 시기는 대학교 졸업반에서 입사 기업을 내정받은 후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시기 정도”라며 “하지만 대부분 취업한 이후 주식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는 거 같고, 주식 공부할 의지도 강하지는 않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윗세대인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했던 거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저금리로 쉽게 집 살 수 있는데 굳이...  

일본 젊은이들이 부동산 투자를 보는 시각은 어떨까. 회사 사무실은 도쿄에 있지만 사이타마 현에서 재택 근무를 하는 켄 씨는 “코로나 이후로 재택이 일반화돼 굳이 도쿄에서 살 필요가 없어졌다”며 “도쿄 신주쿠에서 40분~1시간 정도 걸리는 사이타마 현에서 살면 도심보다 야칭(월세)이 세 배이상 싸 월급만으로도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쿄 도심에 방 한 칸짜리 15평 맨션의 월세는 관리비까지 18만엔(한화 160만원), 사이타마 현의 방 세 개짜리 맨션은 월세는 6만엔(53만5천 엔) 남짓이다. 그는 “직업상 이전부터 암호화폐에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왔지만, 이 자산이 없더라도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도쿄 근교에 집을 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 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전했다.

일본종합주가지수(닛케이지수)가 연일 상승 4만포인트를 찍기도 했다.
일본종합주가지수(닛케이지수)가 연일 상승 4만포인트를 찍기도 했다.

닛케이 지수 상승효과, 체감하기 어려워

물론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투자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는 올라갔다. 하지만 주식, 채권, 부동산, 암호화폐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투자보다는 신탁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게임회사에 근무중인 32세 타로(가명) 씨는 “최근 결혼 후 조금씩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현금 이외 자산 대부분은 신탁투자를 하고 있다”며 “대형 금융사들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일본 닛케이 지수가 버블경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반응과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일본 닛케이 지수는 3만9098.68 포인트로 3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장을 마감해 주목받았다. 거래량이 17억6948만주에 달했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비롯해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하 경단련)과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 등이 잇따라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과 대책 마련 의지를 강조했다. 이달초에는 4만 포인트를 넘어 주목받았다.

실제로 34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날, 기자회견할 때 기시다 총리는 ‘국민들의 실생활 경제 사정이 나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다’는 지적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임금 인상을 실현해야겠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일본인 젊은이들 네 명은 이번 지수 상승에 대해 “증세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지수상승을 일으킨 것”이라며 “이로 인해 투자 열풍이 부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무거운 세금, 투자이익 실현 어려워 

이들은 일본 2030세대들이 주식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 높은 과세율을 언급했다. 한 번 살 때 1주씩 사고팔 수 없고 100주씩 사야하는 ‘단원주’인 점이 진입장벽을 올리고, 주식이나 암호화폐 등 투자상품에 대한 과세 비율이 높아 사실상 수익실현을 하기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타로 씨는 “배당금과 매각 이익이 발생할 때 기본적으로 각각 소득세 15%와 주민세 5%, 적어도 20%는 떼이는데, 금액이 커지면 비율이 더 올라가서 최대 45%까지 세금으로 나간다”며 "수익이 20만엔 미만일 때만 비과세가 적용되는데  비과세혜택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 금융청이 규정한 소득세와 세율. 사진 = Money Forward
일본 금융청이 규정한 소득세와 세율. 사진 = Money Forward

실제로 한국의 경우 상장 주식 특정 종목 한 개를 10억 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가 아니면 양도소득세가 없는 반면, 일본은 배당금과 양도 이익에 대해 국내 종목도 20.315%의 과세가 부과된다. 이 중 0.315%는 ‘부흥특별소득세’로 2037년 12월 말까지 추가과세가 이루어지며 나머지 15%는 소득세, 5%는 주민세다.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반면 일본은 주식 매각이익 등 다른 소득과 함께 산출되는 총소득 금액에 따라 5~45%의 소득세가 부과된다. 주민세와 부흥특별소득세가 여기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최대 세율은 55%에 달한다.

소타 씨는 “암호화폐와 주식 등 모든 잡소득이 20만엔이 넘으면 확정신고를 의무적으로 해야하고 누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익 실현을 하기가 부담스럽다”고 동의했다.

※ 양소희는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 후 기자 생활을 하던 중 고등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일본 생활을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인 남편을 만난 후 도쿄에 완전히 정착해 프리랜서 기자 생활과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이슈에 대한 현지인들의 '진짜' 생각을 한국에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