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 경제
  • 입력 2024.02.02 18:10
  • 수정 2024.02.06 16:53

대나무 숲의 비밀...꽃 피우자마자 죽는 까닭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대나무의 진화, 군집화 통한 경쟁력
다른 나무, 버섯조차 생존 못하게 해
그러나 수명 길지 않은 이유는 뭘까
산업생태계에 주는 특별한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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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자마자 죽는 대나무

어릴 적에는 대나무가 풀인지 아니면 나무인지 정확히 몰랐다. 대나무는 분류학적으로 보면 벼과 식물이다. 즉 벼와 대나무는 닮았고 풀이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대나무는 나무에 가깝다. 대나무는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로 대나무는 꽃이 필 때면 말라죽는다고 한다. 꽃은 50년에서 120년 사이에 한번 피는데, 그러고는 말라죽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대나무 숲은 각각 대나무 한 그루씩이 아니라 한 뿌리를 가진 군집이라는 점이다. 즉 군집으로 살아가는 대표적인 식물이 대나무다. 셋째로는 마디 성장을 한다는 점인데, 옆으로 두꺼워지지 않고 위로 한순간에 커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나무 속이 비어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마디 성장의 결과다. 이 세가지 특징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 모두 특별한 이유가 있다. 

먼저 꽃이 피면 대나무가 죽는다는 것은, 꽃을 피우는 이유가 종자를 퍼트리기 위해서라는 의미다. 즉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군집으로 살아 가기 때문에 종자의 필요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꽃 피는 시기도 짧게는 50년, 길게는 120년이 지나야 하기 때문에 계속 종자를 퍼트릴 의도도 없다. 오랜 세월동안 대나무가 진화를 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개화의 시기를 측정한 결과다.

꽃 피는 것 자체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것이라 군집을 형성하고 있는 대나무로서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꽃 피우고 씨 퍼트리는 데 이점이 없다. 군집으로 뿌리를 확장하기만 해도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꽃을 피우는 시점이 됐다는 것은, 더 이상 대나무 개체군의 확장이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환경상 가장 불리한 순간이 되었을 때, 그 지역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꽃을 피워서 다른 곳에 씨앗을 뿌린다고 보는 게 전화론적 관점이다. 명확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군집 생활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나무 숲인 담양 죽녹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나무 숲인 담양 죽녹원.

다른 식물들 생존 막는 군집생활

둘째로 군집 성장을 하는 이유는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군집으로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은 햇빛을 받지 못해 자랄 수 없다. 어떤 식물이든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대나무 숲에서는 뿌리 내리기도 쉽지 않다. 땅속은 이미 가득찬 대나무 뿌리가 다른 식물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그러니 대나무 숲에는 대나무 이외에는 자랄 수 없다. 특이하게 곰팡이나 버섯도 대나무 숲에는 자라지 못한다. 대나무가 가진 항균 능력이 다양한 버섯종까지도 자라지 못하게 막는다.

세째로 마디 성장을 한다는 점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무로 정의되려면 부피 생장(生長)을 해야 하지만 대나무는 그렇지 않다. 즉 나무는 줄기가 나이테를 만들며 두꺼워지면서 자라지만,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고 옆으로 두꺼워지지 않으며 위로만 자란다. 이 점은 대나무 군집의 특징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하나씩 자랄 경우 군집 효과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군집은 빠르게 형성 되어야 군집 방어력이 생기는 데, 그렇지 못하면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있다. 다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막기 위해 군집으로 최대한 빨리 자라서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차단한다. 실제 한 뿌리이니 한 번에 자라는 것도 쉽다. 즉 자라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면 죽순으로 있다가 바로 성장을 하면 된다. 자라더라도 하늘을 가득 덮게 자라기 위해서는 가능한 높이 자라는 것이 좋다.그래야 스스로 하늘을 가리고 햇빛을 독차지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햇빛을 못 받거나 영양분이 부족한 대나무 개체가 있을 때는 한 뿌리로 연결되어 서로 나누며 고르게 성장한다. 즉 군집으로 성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마디 성장을 하는 것이다.  

대나무는 왜 빨리 죽을까 

대나무의 이런 특징에서 결국 군집 성장이 진화의 경쟁력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군집 성장에는 나름의 문제점도 있다. 바로 영양분의 확보 문제다. 식물이 자라는 데는 다양한 영양분이 필요한데, 군집으로 생활하면 한 지점의 흙만 집중적으로 지배를 하기 때문에 그 흙 속에 필수 미네랄 성분이 확보되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을 유지할 수 없다. 영양분의 확보가 힘들어질 때 꽃을 피워서 다른 지역으로 종자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고 이것이 꽃을 피우는 이유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나무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영양분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군집의 성장으로 고갈되고 더 이상 보충이 안될 때 그 땅을 떠난다. 그때 대나무는 꽃을 피우는 결정을 한다.

꽃을 피울 때도 대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씩 피우지 않고 한꺼번에 피운다. 한 뿌리에서 개화가 되었으니 한 번에 피고, 꽃이 지면 비록 많은 수의 씨앗이 설치류에게 먹힐지라도 일정량은 먹이감이 되지 않고 흩어질 것이다. 대나무가 개화할 때는 씨앗을 먹으려는 설치류가 엄청 모여든다고 한다. 그만큼 영양가도 높다.

이처럼 군집이 대나무 개체의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개체군의 '성장'에 불리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어진 흙에서만 영양분을 활용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대나무는 군집을 수백 년간 유지하기가 힘들다. 오랜 수명을 가지고 있는 다른 나무들은 대부분 홀로 서 있다. 그리고 이런 나무는 주변에 다른 나무가 없진 않지만, 영양분의 유입을 막지도 않는다. 경쟁을 해도 다양한 영양분을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동식물들이 드나들도록 하고 그들이 공급하거나 나누어주는 영양분으로 서로 오랫동안 견디며 살아남으려 한다. 하지만 대나무한테는 그런 여유가 없어 보인다. 대나무 스스로 택한 가장 효과적인 생존의 진화 방식이 오히려 그 종의 번성을 막고 있는 이유가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칼스배드에 있는 '캘러웨이 골프' 본사.
미국 캘리포니아 칼스배드에 있는 '캘러웨이 골프' 본사.

대나무처럼, '캘러웨이 골프'회사도 

이런 대나무의 생존 방식이 산업 생태학적 관점으로 보면 어떤 부분과 비슷할까.  가장 근접해 보이는 것이 바로 '지역산업 클러스터'다. 지역 클러스터는 대나무의 생태 구조와 비슷하다. 바로 군집을 이뤄야 산업 경쟁력이 생긴다는 측면이다.

지역 클러스터의 특징을 보자. 첫째는 특정 산업을 기반으로 시작되지만 실제는 특정 산업의 특정 기업이 출발점이 된다. 톰 피터스의 『경쟁론』에 보면 미국의 골프 산업에 대한 경쟁력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골프 산업이 뿌리를 내린 곳이 '캘러웨이 골프' 본사가 자리잡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Carlsbad, California)다. 캘러웨이가 '빅버사'로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 그 지역이 미국 골프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핵심 기업이 등장을 하면 그 기업을 중심으로 부품 공급업체가 등장하고 이어 관련 서비스 업체들로 군집화되고 산업이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지역산업 클러스터다. 즉 앵커기업(anchor tenant)이 탄생하면 그 기업을 중심으로 모든 지역산업 생태계가 움직인다. 그 기업이 그 지역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잡는가에 따라서 지역의 운명도 결정된다. 마치 대나무가 한 뿌리에서 성장해 군집을 형성하는 것과 비슷하다.

1982년에 창업한 캘러웨이 때문에 칼스배드는 미국 골프 산업의 '메카'가 됐다. 그 중심에는 창업자인 일리 R. 캘러웨이 회장이 있었다. 그는 세계 최대의 섬유회사를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그러다 63세의 나이에 자신의 와이너리를 처분하고 골프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기존의 골프채는 헤드가 너무 작아 골프공을 맞추기 힘들다는 생각도 발전시켰다. 간단한 생각에 헤드 크기를 키우고 크기만큼 무게를 줄여야겠다고 해 티타늄 소재를 사용했다. 또한 탄소 섬유를 사용해 골프채 무게도 줄였다. 섬유산업에 몸담았던 창업자의 경험이 골프 산업의 혁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캘러웨이의 확장은 지역 클러스터 군집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두번째 모습으로 지역 산업이 클러스터화되면 급성장한다.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클러스터로 최대한 빠르게 성장한다. 기간도 그리 길게 걸리지 않는다. 10~15년 정도면 충분히 지역 클러스터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마치 대나무가 마디 성장을 하듯이 클러스터가 급성장하는 성과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경쟁력을 가지게 만드는 핵심은 바로 혁신가와 혁신 아이디어다. 혁신가들이 만든 아이디어가 지역에 빠르게 퍼지게 되면 이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다양한 기업이 탄생하고 더더욱 지역 클러스터화를 촉진시킨다. 그 지역만의 특별한 경쟁력으로 더 군집화가 되어 어느 지역보다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들이 속속 탄생하게 된다. 클러스터내의 경쟁은 공진화를 한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평균적으로 어느 지역보다도 특정산업의 경쟁력이 높은 기업들이 많이 탄생하는 지역이 된다. 

셋째로는 지역 클러스터 역시 수명이 있다. 핵심적인 이유는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 두가지가 있다. 내부적인 요인은 내부 자원의 고갈이다. 자원의 핵심은 대부분 인력이다. 우수한 인력들이 지역 클러스터 산업으로 유입되지 못하고 다른 지역의 클러스터로 간다면 서서히 자금도 빠져나간다. 기반이 되는 부품 소재 업체들이 도산하면서 혁신을 하지 못한다. 외부적인 요인은 바로 경쟁 클러스터가 생긴다는 점이다. 즉 해당 지역의 클러스터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 클러스터가 생기는 것이다.

지역클러스터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한국 대부분의 산업은 중국의 클러스터와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의 클러스터는 지역이 넓고 크고, 사람도 많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과 혁신 경쟁력에서 앞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한국의 산업 클러스터는 중국에 비해 경쟁력 약화로  하나하나 사라질 수 있는 운명이 되는 셈이다. 

한국은 미래 산업 경쟁에서 국가 전략기술산업을 정하고 집중 투자를 하려한다. 첨단바이오, 우주기술, 이차전지, 인공지능, 반도체 등등 전략산업을 택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첨단 산업 단지도 결정하고 지역의 산업단지와 산업 기술을 연결시키려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클러스터로 성장하기 위한 조건을 조성하면서 인력 투자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인재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전략적 필요성만으로 결정하고 투자하면 결국은 지역산업 클러스터를 만들기도 전에 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 초기에 정확한 진단과 전략없이 클러스터를 돈만 주고 땅만 파면 된다고 하여 시작한다면 큰 오산일 수 있다.

클러스터화되기 위해서는 혁신기업 또는 혁신가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며, 이를 확신시킬 수 있는 인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관련 부품 소재 산업들이 조성될 때 비로소 지역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다. 한번 형성이 되면 수십 년 갈 수 있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적절한 관리가 되지 않으면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기 전에 흩어지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갈 수도 있다. 

대나무 군집의 특징을 살펴보면 너무나도 클러스터와 닮아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최근 지역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자체장마다 최대 경제적 목표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산업을 택하고 개발해야 하는지는 지역 발전을 바라는 지역민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이 선택한 산업을 보고 부러워 따라한다면 지역간 클러스터 경쟁이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어느 한 지역의 클러스터가 붕괴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클러스터 정책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산업별 지역클러스터가 만들어지고 각 지역의 특징에 맞는 산업이 뿌리를 내렸으면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고, 후대에도 물려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대나무 군집으로 지역 클러스터를 비교해보듯이 지역 클러스터를 통해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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