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박근태 자동차 칼럼니스트
  • 경제
  • 입력 2024.01.15 10:08
  • 수정 2024.01.21 12:08

왜 완성사가 자동차산업의 대장(大將)일까?

[박근태의 '자동차와 사회']
PC산업에선 CPU회사가 핵심인데,
車산업에선 완성차업체가 대장인 이유는
모빌리티 산업으로 바뀌어도 완성차업체가
배터리 SW업체에 '대장'지위 안 뺏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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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자동차는 본래부터 당연히 바퀴가 네 개였을 것 같지만, 최초로 2차 전지를 사용한, 따라서 최초의 실용적인 전기자동차라 할 수 있는 트루베의 전기자동차도, 한동안 최초의 자동차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액체 연료를 사용한, 최초의 실용적인 내연기관차에 불과한 벤츠의 파텐트 모토바겐도 세 바퀴였다. 본래부터 당연했던 것이 아니라 익숙해져서 당연해졌을 뿐이다.

1881년 귀스타브 트루베가 만든 최초의 전기자동차.
1881년 귀스타브 트루베가 만든 최초의 전기자동차.

완성차 기업이 자동차 산업에서 이른바 ‘사자의 몫(lion’s share)’을 차지하는 대장(大將)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이니까? 그렇다면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에서는 왜 최종 제품을 만드는 개인용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CPU 회사가 핵심일까? 그런데 왜 자동차산업에서는 완성사가 대장일까?

완성사가 자동차 산업의 지배자였던 데는 크게 네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통합형 제품 아키텍처(integral product architecture), 산업의 핵심 기술 장악, 법규 인증과 최종 책임, 그리고 완성사의 정치적, 사회적 역량 등이다. 이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통합형 제품 아키텍처

제품 아키텍처는 제품의 전체적인 성능에 기여하는 제품의 기능 요소들을 제품의 기능을 구현하는 부품과 부분 조립품 등 제품의 물리 요소들에 대응시키는 정의 내지는 체계이다. 

제품 아키텍처= 제품의 기능 요소와 제품의 물리 요소 대응(필자 작성)
제품 아키텍처= 제품의 기능 요소와 제품의 물리 요소 대응(필자 작성)

제품 아키텍처의 기본형은 모듈형 아키텍처와 통합형 아키텍처로 구분된다(아래 그림 참조).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모듈형 아키텍처는 제품의 기능 요소와 물리 요소가 1대 1로 대응하는 아키텍처이고, 통합형 아키텍처는 제품의 기능 요소와 물리적 요소가 복잡하게 대응하는 아키텍처이다. 모듈형 제품은 각각의 요소를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으며, 그것을 조합만 하면 완성품이 되는 제품이다. 따라서 핵심 성능을 담당하는 핵심 부품이 중요하다.

반면 통합형 제품은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 있어, 제품에 요구되는 기능이나 성능 등의 품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각 구성 요소의 관계를 조정하여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제품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통합이 중요하다.

모듈형 아키텍처 제품의 전형적인 예는 개인용 컴퓨터이고,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핵심 부품인 CPU가 중요하다. 그러나 대표적인 통합형 아키텍처 제품인 승용차에서는 개별 부품보다 전체적인 통합이 중요하고, 이 통합은 부품사가 아니라 완성사가 한다.

제품 아키텍처의 기본형= 모듈형 아키텍처와 통합형 아키텍처(필자 작성)
제품 아키텍처의 기본형= 모듈형 아키텍처와 통합형 아키텍처(필자 작성)

산업의 핵심 기술 장악

자동차 산업의 지배제품은 내연기관차이었고, 자동차 산업의 핵심 기술은 엔진기술이었다. 따라서 독자적인 엔진기술을 갖춘 완성사들만이 발전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2000년대 후반부터 일찌감치 전기자동차 위주의 자동차산업 정책으로 전환한 이유 중 하나도 내연기관차의 핵심 기술인 엔진기술은 선진업체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무모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 엔진기술을 꿋꿋이 축적한 현대자동차가 한국자동차산업의 지배자가 되었다.

법규 인증과 최종 책임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와 자동차 산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자동차가 만족시켜야 할 법규가 어마무시하게 다양하고 많다는 것이다. 자동차 개발자들도 자기 업무 관련 법규가 아니면 다 알지 못할 정도이다.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자면,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한국에서 운행되는 자동차의 방향지시등은 '노란색' 계열이어야 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으로 수출되는 차량은 '붉은색' 방향지시등이 허용된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 제작돼 미국에 수출된 차량을 국내에 들여올 경우는 붉은색 방향지시등이 허용되지 않으며, 반드시 노란색 방향지시등으로 바꿔야 한다.

필자도 현대자동차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팰리세이드의 주간주행등 디자인이 문제가 되면서 ‘주간주행등을 차량 좌우에 1개씩만 설치해야 하고, 주간주행등이 분리될 경우, 하나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각 램프 간 거리가 75㎜ 이하여야 한다(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자동차 '펠리세이드'의 주간주행등. 분리될 경우 간격이 75㎜이하여야 한다.
현대자동차 '펠리세이드'의 주간주행등. 분리될 경우 간격이 75㎜이하여야 한다.

이런 형식 승인만이 아니라 배기가스 규제도 만족해야 하고, 안전 성능도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나라 혹은 권역마다 요구하는 법규나 성능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세계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인 자동차산업의 한 단면이다.

법규 입증 못지않게 완성사가 져야 하는 큰 부담은 제품에 대한 최종 책임이다. 몇 년 전 문제가 된 현대자동차 코나 EV의 잦은 화재 원인은 고전압 배터리 셀 제조 결함(음극 탭 리드 접힘)으로 밝혀졌지만,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대자동차가 만든 전기자동차에서 화재가 빈발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고전압 배터리 셀 제조사-부품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완성사의 정치적, 사회적 역량

마지막으로 완성사의 정치적, 사회적 역량이 막강하다는 점이다. 현대적인 자동차 산업의 기틀을 세운 포드를 추월해 1등 자동차 기업으로 오랫동안 군림했던 GM은 대기업의 표준이었으며, ‘GM에게 좋은 것이 미국에게 좋은 것’이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한국이 삼성공화국이라면, 일본은 도요타제국이다. 어디서나 파워는 중요하기 마련이다.

과거 자동차 모터쇼의 한 장면.
과거 자동차 모터쇼의 한 장면.

앞으로도 완성사가 대장일까?

현재 진행 중인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결과로 자동차산업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의 중심에 자동차라는 제품 대신 '모빌리티 서비스'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자동차/SDV(주-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란 소프트웨어로 정의되고, 차별화되는 자동차이다.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주행 성능은 물론 편의 기능, 안전 기능, 심지어 차량의 감성 품질까지 규정한다.)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도 완성사가 자동차산업의 대장일까, 아니면 그 지위를 잃게 될까? 이를 예상하려면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요인이 어떻게 변할지 살펴봐야 한다.

우선 제품을 중심에 놓고 보면,

첫째, 미래형 자동차(전기자동차/SDV)로 진화하면서 모듈성이 증가하겠지만, 제한된 공간과 중량, 원가의 제약 아래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자동차는 본질적으로 통합형 아키텍처를 유지할 것이다.

둘째, 내연기관차에서 미래형 자동차(전기자동차/SDV)로 진화하면서 산업의 핵심 기술도 엔진 기술에서 배터리 기술과 SW 기술로 변해갈 것이다. 따라서 이는 완성사의 지위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셋째, 법규 인증과 최종 책임은 완성사가 벗을 수 없는 '천형' 같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완성사의 정치적, 사회적 역량이 어떻게 변동할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며, 완성사에 따라 운명이 갈리겠지만, 살아남은 완성사의 정치적, 사회적 역량은 여전히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제품과 권력 측면에서 보면 완성사의 지배적 지위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자동차라는 제품이 중심인 자동차산업에서 모빌리티 서비스가 중심인 모빌리티산업으로 산업이 변환되는 것은 완성사의 지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스마트폰 사례를 보면,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생태계를 모두 장악한 애플이 있고,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강자이지만,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의존하고,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 삼성전자가 있다.

모든 완성사가 자동차산업의 애플이 되고 싶겠지만, 일부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대/기아자동차는 어떨까? 1등이라도 독점하기 어려운 자동차 산업의 특성과 SW 측면에서는 독보적인 테슬라를 제외하면 주요 완성사가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 그리고 현재까지 보여 준 역량을 고려하면 아직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 참고 자료

박근태. 2023. 『전기자동차가 다시 왔다?! -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지성사.

※ 박근태는 ‘전기자동차가 다시 왔다?!’의 저자다. 20년 넘게 자동차회사 연구소에서 자동차 개발 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로봇 태권 V’보다 노동조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대자동차노동조합 남양본부장,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노사관계학(석사)과 경영학(박사)을 공부했고, 독립연구자로 자동차산업과 노동, 노사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