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 경제
  • 입력 2024.01.12 08:48
  • 수정 2024.01.19 08:53

또 부자감세, 금투세 폐지는 공짜점심이 아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에 대한 단상
이어진 부자감세, 공평과세 원칙 어긋나
이번엔 투자자 감세? 상위 1%만 실제 혜택
모두를 '공짜밥' 먹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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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표된 부자감세

“구태의연한 부자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인 상생을 위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 "증시는 국민과 기업이 함께 상생하는 장이며 국민의 자산 축적을 지원하는 기회의 사다리다"

연초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어라, 또?’였다.

그렇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간혹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일관성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감세정책’이다. 그것도 거의 매번 ‘구태의연한 부자감세 논란’을 일으키는 ‘감세정책’이다. (오해나 속단은 말자. 논란이 있다고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니, 논란이 된 정책이 모두 ‘부자감세’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현 정부 하에서 부자감세 논란이 일었던 정책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우선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25%에서 22%로),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상향 조정, ▲증여세 공제 확대(5천만원에서 결혼이나 출산시 1억씩 추가) 그리고 ▲주식 양도소득세 관련 대주주기준 완화(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 등이 있었다.

주식투자자 1%를 위한 '금투세 폐지' 선언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금투세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 상품으로 연간 5000만원이 넘는 양도차익을 거둔 투자자(해외 주식, 채권 등은 연 수익 250만원 초과 투자자)에게 3억원까지는 20%, 3억원 초과분에 대해선 25% 세율로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원래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2022년 12월, 여야 합의를 통해 2025년까지 시행이 유예되었다.

필자는 세무 관련 일을 하는 공인회계사 겸 세무사로서 금투세 도입 때부터 찬성하는 쪽이었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를 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고,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수직적 형평성이나, 비슷한 소득을 가진 사람들은 유사한 수준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수평적 형평성에도 맞는다고 판단했다.

2025년부터 시행될 금융투자소비세. 폐지될 경우 매년 평균 1조 3443억 원,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4조 328억원의 세수가 추징될 것으로 국회예산정책처가 전망했다. 사진=국회예산처/KBS
2025년부터 시행될 금융투자소비세. 폐지될 경우 매년 평균 1조 3443억 원,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4조 328억원의 세수가 추징될 것으로 국회예산정책처가 전망했다. 사진=국회예산처/KBS

이자나 배당소득에 대해서 종합소득세를 부과하면서, 투자차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 또한, 역진적인 부가가치세나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꼼짝없이 부담하게 되는 근로소득세를 감안하면 충분히 명분 있는 세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폐지 추진이 선언된 것이다.

지난 2022년 말 기준으로 국내 주식 투자자가 약 1500만명인데 정부는 이중 15만명 정도가 금투세를 내게 될 것으로 예상했단다. 단순계산으로 금투세를 폐지하면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은 상위 1%의 투자자라는 말이다. ‘부자감세’라는 말이 나올 만하지 않나?

더구나 지난해 '세수 펑크'는 약 6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도 여러 번 들어서 이젠 숫자가 익숙하다.) 올해에도 경기 회복이 불확실해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 집권 초부터 누누이 건전재정, 균형재정을 강조해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감세정책이다. 래퍼곡선에 기반한 레이거노믹스의 재림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자)감세에 대한 일관된 믿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 필자의 관심을 끄는 단어는 ‘부자감세’보다는 ‘투자자감세’다. 최근 정부가 자본시장과 관련해서 내놓은 정책을 보라. '공매도 금지',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상향(완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금투세 폐지'다.

이런 정책들로 증권시장을 활성화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규제를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등의 명분과 함께 내세우는 게 바로 ‘개미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1500만 투자자들이 원한단 말이다. 며칠 전, 금투세 폐지가 부자감세가 아니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자감세’가 아니라 ‘투자자감세’라고 대답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선언한 윤석열 대통령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야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선거를 위해 발표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선언한 윤석열 대통령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야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선거를 위해 발표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9%는 공짜 점심 먹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1500만 투자자 중 상위 1%정도만 혜택을 보게 될 것이 뻔히 보이는 데, 그럼에도 나머지 99%의 투자자들은 금투세 폐지에 찬성을 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법인세율 인하, 종부세 과세대상 완화, 증여세 공제한도 상향, 주식양도소득세 과세대상 대주주요건 완화. 필자는 그리 부자가 아니고, 또한 주변에 이런 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렇게 완연한 ‘부자감세’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필자가 확인한 주변 반응은 절반 이상이 긍정적이었다.

10% 법인세율에 이런 저런 세액공제로 내는 세금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 대표, 종부세와는 별 관련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1주택자, 자녀 결혼을 앞두고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 주려는 부모들(재산이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증여세를 안내도 세무서에서 전혀 신경 안쓰니 걱정말라고 몇번이나 상담을 해줬던), 기껏해야 총 투자액이 1억원도 안되는 진짜 개미투자자들.

이들은 언급된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자들이 아니다. 그런데 왜 찬성을 할까? 앞으로 열심히 살면 직접 혜택을 보게 될 지 모르니까? 아니면, 직접 혜택을 볼 진짜 부자들이 시장을 활성화(?)하면 간접적으로 혜택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이번엔 수년간 주식투자로 번 돈을 다 합해 5천만원도 안되는 개인투자자들의 차례다. 물론, 필자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공식적인 서베이에 불과하지만, 반대가 월등하지 않다. 이래서, 야당이 반대를 할 가능성이 높고, 법 개정이 안되면 금투세 폐지는 힘들 것임을 알면서도 그냥 폐지 추진을 선언했나도 싶다. 지금은 벌써 잊혀진 ‘김포의 서울 편입추진’처럼.

하여간, 보수냐 진보냐 같은 구분보다 내가 낼, 또는 낼지도 모를 세금이 줄어드냐가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판단기준이다. 인지상정일까?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구멍난 세수는 줄어든 세출-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연구개발, 교육지출 등의 감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영향과 대가는 크고 심대할 것이다. 눈 앞의 이익, 어쩌면 실제로 누리지도 못할 이익을 위해 희생하기엔 말이다.

결국 세 사람이 있다.

점심을 공짜로 먹은 사람과 점심값을 부담하는 사람. 그리고 공짜로 점심을 먹지도 못하면서, 공짜로 먹은 것 같은 느낌 속에 점심값을 함께 부담하고 있는 사람.

필자는 사람들의 느낌엔 별 관심이 없다. 그냥 공평과세가 구현되었으면 좋겠다. 건전재정도.

※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겸 세무사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 세무조정 업무뿐 아니라 실사, 경영진단, 가치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미국 교환 근무후 귀국해 SOX 404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 및 내부통제 관련 컨설팅 업무를 했다. 2008년부터는 IFRS (국제회계기준) 도입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했으며, 2010년이후 KDB생명보험, ING생명에서 기획관리실장과 재무부문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축적해 온 회계와 세무, 기업구조조정, 경영기획 및 관리, 금융·보험상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무지침서를 출간하고 강의로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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