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남경국 헌법학연구소장
  • 법률
  • 입력 2024.01.04 15:24
  • 수정 2024.01.05 15:48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않는 게 옳다
특검법, 검찰이 金 불소추특권 보장해준 탓
거부권 행사, 국민신임 배반 행위
반대 표명하되 거부권 포기로 국회 존중을

한동훈, 선거에 불리하다고 특검법을 반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김건희 특검법)이 국회재적의원 298인 중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재석의원 180인 전원 찬성으로 의결되었다. 이에 대통령실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즉각 입장을 내놓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을 그걸(김건희 특검법)로 뒤덮고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하겠다는 명백한 악법이다”고 주장하였다.

먼저 한 위원장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선거를 앞둔 시점까지 국민의힘이 김건희 특검법안을 방치한 책임이 크다. 무엇보다 한 위원장의 주장은 김건희 특검이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한 위원장이 선거의 유불리를 이유로 특검을 반대하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것은 거부권을 보장하는 헌법취지에 반한다.

사진=채널A 갈무리
사진=채널A 갈무리

검찰, 대통령 배우자에 불소추 특권 보장해줘

사실 ‘김건희 특검법’은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의 검찰과 현재 윤석열 ‘대통령’하의 검찰이 4년여 동안 김건희 여사의 범죄혐의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철저한 수사와 기소를 외면한 결과이다.

우리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 이외에 배우자 등 가족에 대해서는 형사상 불소추특권이 없다. 그럼에도 검찰은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 사실상의 불소추특권을 보장해 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 국회에 재의요구를 한다면 앞서 ‘양곡관리법’, ‘간호법’, 그리고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에 이어 네 번째 거부권 행사가 된다. 앞선 세 번의 거부권 행사는 사실상 법률안 거부권 남용의 측면이 없지 않았다. 위 법률안들은 헌법상 국민의 권리인 기본권을 두텁게 보호할 목적이었고, 법률 집행시 정부에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자신만의 이념에 사로잡힌 신념과 정파적 이익에 따른 판단 하에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고 보인다.

무엇보다 ‘김건희 특검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를 훌쩍 넘는 180인의 의원이 찬성한 법률안이다. 우리 헌법 제128조 제1항은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행 헌법은 국회재적의원 300명 중 과반수 즉 ‘국회의원 151명’에게 대통령과 같은 헌법적 위상을 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원 180인이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거부권 아니고도 반대의사 표할 순 있어

대통령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방법이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53조 ①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헌법 제53조 ⑤ 대통령이 제1항의 기간내에 공포나 재의의 요구를 하지 아니한 때에도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헌법 제53조 제5항에 따라 윤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이 정부에 이송되면 15일 이내 공포하지 않거나 재의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다. 이 경우 15일이 지난 후 확정된 법률은 대통령이 지체없이 공포하거나 법률안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공포를 거부하고 국회의장이 공포하도록 할 수 있다(헌법 제53조 제6항).

위와 같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 기간 내 공포와 재의요구를 하지 않아 특검법이 법률로서 확정되는 ‘소극적 방식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면서도 대통령의 반대 의사는 분명히 드러내는 방법이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선택지는 ‘김건희 특검법’이 정부에 이송된 후에 바로 공포하는 것이지만, 헌법 제53조 제5항에 따른 ‘소극적 방식의 거부권 행사’도 윤 대통령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거부권 행사, 국민신임 배반 행위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배우자에 대한 수사를 막겠다’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다시 행사한다면, 이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권한남용에 해당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탄핵심판’ 인용 결정에서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특정 정당, 자신이 속한 계급・종교・지역・사회단체, 자신과 친분 있는 세력의 특수한 이익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 전체를 위하여 공정하고 균형 있게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의기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하여야 할 정도로 대통령이 법 위배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사적 이익을 위해서 ‘대통령으로서 공정하고 균형있게 업무를 수행할 의무’를 위반하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의원들, 양심에 따라 재의결해야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여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경우 국회 스스로 입법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53조 제4항은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때 국회 스스로 재의결 즉, 재적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국회의원 300명 중 151명 이상 출석에 101명 이상 찬성)으로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곧바로 확정되는 절차를 두고 있다. 헌법과 국회법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고(헌법 제46조 제2항),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하도록(국회법 제114조의2) 규정’하고 있다.

특히 국회법은 대통령의 부당한 압력이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대통령으로부터 환부된 법률안’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의 무기명투표 표결을 보장하고 있다(국회법 제112조 제5항).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각자가 독립된 헌법기관이자 입법부인 국회의 일원이다. 대통령의 권한남용으로 국회의 입법권이 침해된 경우 국회의 입법권 회복과 존중에 여야 국회의원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여당 국회의원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나서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통령 배우자의 범죄혐의에 대한 특검을 막는 데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앞장선다면 대통령과 국민의힘 전체가 국민적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이제라도 김건희 특검을 통해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협조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각성과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 남경국은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원 헌법석사, 독일 쾰른대학교 법과대학 LL.M.,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쾰른대학교 국가철학 및 법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동아대학교, 광운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연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헌법을 강의했다. 그리고 남경국헌법학연구소 소장으로 헌법 강연과 연구활동 중이다. 저서는 「곽노현 버리기」(공저), 「헌법참견」, 「헌법과 이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