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 오비추어리
  • 입력 2023.08.19 09:18
  • 수정 2023.08.20 11:27

홍차에 바친 70년, '딜마' 회장을 애도하며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딜마' 브랜드 일군 메릴 페르난도 회장
지난달 93세의 일기로 타계
유럽국가 브랜드속에 스리랑카 브랜드 키워

세계 차산업의 '거인' 타계

지난 7월20일 스리랑카 홍차회사 딜마(Dilmah)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메릴 페르난도(Merrill J Fernando)가 9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딜마는 유럽을 위시한 서양 국가들이 압도하는 홍차 산업에서 아시아 회사로는 나름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스리랑카 홍차 회사다.

홍차는 거의 대부분이 인도, 케냐, 중국, 스리랑카, 터키 등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차 브랜드는 거의 다 영국(포트넘앤메이슨, 해러즈, 트와이닝 등), 프랑스(마리아주 프레르 등), 독일(로네펠트 등) 같은 유럽 국가들이 가지고 있다. 아마도 19세기 후반기부터 홍차 음용을 전 세계에 확산시킨 주체가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국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된 주요 생산국들은 자본과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생산량 대부분을 벌크 형태로 저렴한 가격에 수출할 뿐이다. 이러다보니 생산국들은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홍차 브랜드를 만들 여건이 되지 못했다. 이 홍차를 수입해서 블렌딩(Blending)하고 패키징(Packaging)하고 마케팅(Marketing)해서 부가가치를 높여 판매하는 나라는 주로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이다.

유럽 선진국 홍차회사와 경쟁하는 '딜마'

이런 환경에서 예외적이라 할 수 있는 경우가 바로 스리랑카의 '딜마' 브랜드다. 인도와 스리랑카는 좁은 해협을 두고 인접해 있지만 나라 면적, 인구, 국력 등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다. 홍차 생산량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연평균 130만 톤을 생산하고 스리랑카는 30만 톤 수준이다. 그럼에도 인도 홍차 업계가 딜마의 브랜드 파워를 매우 부러워할 정도다.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홍차를 생산해 영국으로 가져갔다. 스리랑카에서 차 사업을 크게 한 사람 중 한 명이 영국인 토마스 립톤(Thomas Lipton)이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홍차브랜드 립톤(Lipton)을 만든 사람이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홍차를 생산해 가져가면서도 영국은 식민통치 기간에는 스리랑카인들을 차 전문가인 '티 테이스터(Tea Taster)'로 양성하지 않았다.

영국은 1948년 스리랑카 독립 후 처음으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을 런던으로 데려가 티 테이스터 교육을 시켰다. 이 중 한명이 딜마를 설립한 메릴 페르난도이다. 영국에서 티 테이스터 공부를 하면서 메릴 페르난도는 스리랑카에서 아주 값싸게 가져온 홍차를 영국인들이 재가공하여 비싸게 판매하는 현실의 불합리에 눈을 떴다.

지난달 타계한 메릴 페르난도 딜마 회장
지난달 타계한 메릴 페르난도 딜마 회장

스리랑카로 돌아와서 차 회사 설립

스리랑카로 돌아온 후 1962년 자신이 직접 회사를 세워 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크 단위로 수출해서는 유럽회사에 종속될 뿐 이익을 남길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했다.

1985년 '딜마' 브랜드를 만들어 패키지 형태의 완제품 판매를 시작하고 1988년에는 회사 이름까지 딜마로 변경하면서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딜마라는 이름은 그의 두 아들 딜한(Dilhan)과 말릭(Malik)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영국 공부에서 얻은 경험 덕분인지 메릴 페르난도는 품질 뿐만 아니라 패키지 디자인에도 각별히 신경 쓰는 등 마케팅에도 집중했다. 딜마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한 점이다. 메릴 페르난도 회장의 남다른 비범함이다.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딜마를 판매하면서 인지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뉴질랜드, 터키, 러시아, 일본, 영국 등으로 수출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웠다. 딜마의 성공과 함께 메릴 페르난도 회장은 약 70년 이상을 홍차회사 딜마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차 산업의 상징이었다.

1948년에 인도와 스리랑카가 독립은 했지만 영국은 1970년대 후반까지 여전히 이들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차 산업을 좌지우지 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두주자로서 메릴 페르난도 회장은 자신의 힘과 경험을 이용해서 스리랑카의 다른 차 회사들이 이런 시스템의 어려움 속에서 성장하고 완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그래서인지 스리랑카는 이웃한 인도 보다는 브랜드를 달고 완제품으로 수출하는 홍차회사들이 많은 편이다.

딜마의 대표작 와떼(WATTE) 시리즈. 스리랑카 홍차의 특징인 고도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다양한 와인 종류와 매치시켜 마케팅에 성공했다. 사진=구글
딜마의 대표작 와떼(WATTE) 시리즈. 스리랑카 홍차의 특징인 고도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다양한 와인 종류와 매치시켜 마케팅에 성공했다. 사진=구글

스리랑카 차 산업을 지킨 페르난도 회장

메릴 페르난도 회장은 딜마 홍차 품질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홍차 전체 품질 유지에도 큰 공을 세웠다. 현재 인도와 케냐는 90% 이상의 홍차를 CTC 가공법으로 생산한다. CTC홍차는 간단히 말하면 주로 티백에 들어가는 값싼 홍차다.

반면 스리랑카는 90% 이상을 상대적으로 고품질이라 할 수 있는 정통 홍차를 생산한다. 티백이 대세였던 당시의 세계 홍차산업 흐름에 맞추어 CTC가공법으로 전환하려는 스리랑카 정부 정책에 극렬히 반대하여 저지시킨 사람 역시 메릴 페르난도 회장이었다. CTC가공법으로 전환했다면 다양한 맛과 향이 매력인 스리랑카 홍차의 장점은 사라졌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성공한 사업가로서 메릴 페르난도 회장은 사회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메릴 페르난도 자선재단(Merrill J. Fernando Charitable Foundation)과 딜마 보존협회(Dilmah Conservation)를 설립해 다양한 자선사업과 생물다양성 보호 및 환경보호에도 큰 공헌을 했다.

메릴 페르난도 자선재단 홍보사진.
메릴 페르난도 자선재단 홍보사진.

오늘날에도 인도와 케냐, 스리랑카 등 생산국 대부분은 여전히 벌크 단위로 낮은 가격에 수출하고 있는 현실이다. 인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삼홍차 90% 이상이 옥션에서 1㎏에 2.5달러 정도의 가격에 거래된다. 이런 조건에서 탈피하고자 이들 국가들도 필사적으로 딜마 같은 브랜드를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브랜드를 달고 완제품으로 수출해서 성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자본과 마케팅 능력, 오랫동안 축적된 블렌딩 실력을 갖고 있는 서양 홍차회사들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영국과 유럽국가들이 압도하는 차 산업에서 40여 년 전 홍차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시킨 메릴 페르난도 회장이 새삼 거인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

※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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