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 시사
  • 입력 2022.03.21 11:59
  • 수정 2022.12.01 12:30

처음부터 어긋나는 윤 당선자의 언행

[언어학자가 본 한국 대선과 전망]
'통합과 협치, 국민 위한 정치’ 약속 안지켜
우선 과제 아닌 집무실 이전, 소통도 없어
"다른 의견을 수렴, 소통하는 노력 있어야"

20대 대통령으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다. 당선자는 첫 일성으로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전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우리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첫 일성의 3가지 핵심어

진영 대립을 초월하는 ‘통합과 협치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3개 핵심어(key word)이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은 ‘초접전 속 신승’ 결과를 통해 누가 당선되더라도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말고 통합과 협치의 정치를 추구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으므로, 윤석열 당선자의 첫 일성은 민심을 제대로 읽은 올곧고 적절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장을 하나만 독립적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여러 문장을 모아서 일관된 주장을 한다. 화자의 주장을 표현한 문장을 주제문(topic sentence)이라고 한다. 훌륭한 담화의 핵심 요건은 모든 문장이 이 주제문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전개되어 '일관성'(coherence)을 갖추는 것이다. 당선자의 인사말은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큰 틀의 대국민 약속을 담은 엄숙한 주제문이다. 당선자는 앞으로 얼마나 이 주제문의 취지와 내용을 뒷받침하는 언행을 보이느냐에 따라 국정을 이끄는 일관성이 평가될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지 벌써 10 여일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10일 동안 당선자의 언행으로 첫 단락의 일관성을 평가해 보자.

첫째, ‘통합’ 관련 언행을 들여다보자. 통합의 전제는 화합이고 화합의 전제는 분열과 갈등을 낳았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심한 경쟁과 대립으로 서로 상대 후보와 진영에게 격한 말로 상처를 많이 주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먼저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지나친 말을 했던 것을 진정성 있게 사과하며 서로 상처를 어루만져야만 다시 손을 함께 잡을 수 있고 화합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그 열쇠를 가진 사람은 승자다. 승자가 먼저 마음을 크게 열어서 패자를 위로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끌어안는 넓은 아량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윤석열 당선자가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진영을 먼저 찾아가서 직접 패배를 위로하고 적극적으로 화해의 분위기를 만드는 통이 큰 행보를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동의하는 분이라면 어떤 정파, 지역, 계층 관계없이 전부 함께하고 통합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까지 발표된 인수위 인적 구성을 보면 과연 이 통합의 정신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핵심 인사가 ‘윤핵관’(윤석열측 핵심 관계자) 인사에 편중되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이·서·남(이명박정부·서울대·남성)’으로 요약되는 편파성이 벌써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인수위원 24인 중 ‘이명박(MB) 정부’에서 활동했던 경력을 가진 인사가 9명이나 되는 것이 대표적 특징이며 서울대 출신들이 압도적 다수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여성이 4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영을 초월하여 상대 진영에서 파격적으로 인재를 등용한 예가 하나도 없다. 당선인이 강조한 통합의 정신을 구현한 인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둘째, '협치' 관련 언행을 들여다보자. 협치의 전제는 신뢰 구축이다. 극한 대립을 하던 상대방과 갑자기 의기투합하여 협치하자고 선언한다고 해서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할 수 있을까? 상호 존중과 신뢰가 어느 정도 쌓여야만 그것을 바탕으로 협치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분열과 증오의 극단적인 진영정치 대신 중도 수렴의 정치를 이끄는 첫 단추는 상대 진영과의 진솔한 소통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작은 것부터 협치의 길을 여는 것일 것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의 오찬 회동이 4시간을 앞두고 갑작스레 불발됐다. 정치권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주요 요인으로 추측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공기업·공공기관 인사권을 둘러싼 갈등이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회동 불발의 이유가 무엇이든 양측 모두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순조로운 정권 이양’에 궁극적 책임이 있으므로 첫 만남부터 갈등을 일으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 당선자의 입장에서는 '협치 리더십’ 발휘의 첫 단추를 잘 끼우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당선자로서 상대 진영의 수장인 현직 대통령 앞에서 먼저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고 더욱 예우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먼저 보일 수는 없었을까? 인사는 여전히 현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과도한 요구를 하기보다 타협과 조율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협치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랬다면 첫 단추의 신뢰가 쌓여서 앞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 해 나가는 협치의 길을 열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3월 20일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3월 20일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누구를 위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인가

셋째, ‘국민을 위한 정치’ 관련 언행을 들여다보자.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추진은 국민을 위한 정치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나라 안팎으로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으며 사상 최악의 강원도 산불로 당장 산불 피해 복구와 대책이 시급하다. 또한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코로나 방역 막바지 단계에서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하고 대선 기간 내내 쟁점이 되었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건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그야말로 긴밀한 협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토록 긴박한 국정 현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당선인으로서 현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치하려는 노력을 보이지는 않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접근하는 모습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는 모습일까?

정치권은 물론 국민 다수로부터 혹독한 비판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왜 굳이 이미 훌륭한 시설을 갖춘 청와대 집무실을 이토록 급작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당선자 측의 주장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중요한 목적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과 긴밀히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사전 여론 조사를 하거나 공청회를 연다든지 하는 소통 노력은 전혀 한 적이 없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한 일이라면서 정작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노력은 안 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방부가 갑작스럽게 이전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안보 공백과 국방 행정의 혼란을 어떻게 감수하고 대처할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부족하다. 이 모든 비판과 우려를 무릅쓰고 이 일을 밀어붙이는 것은 당선자가 강조한 ‘국익과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각오를 정면에서 자기 부정한 행보이다. 이런 성급함과 무모함이 당선인이 이끄는 정부의 앞으로의 국정 파행을 예견하고 있지는 않을까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포용과 인내, 열린 소통의 노력을

결론은 윤석열 당선자가 당선 인사말로 언급한 주제문 이후 지난 10일 동안 벌써 이와 어긋나는 언행을 보여서 일관성에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주제문에서 언급한 3개의 핵심어(통합과 협치와 국민을 위한 정치)의 진정한 의미에 미치지 못하거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탈적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의 국정 파행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윤석열 당선자가 이런 비판과 우려를 직시하고 더욱 각성해서 통합과 협치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끄는 성공적인 정치인이 되기를 바란다. 통합과 협치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진정성 있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름을 존중하고 다른 의견을 수렴해서 하나로 이끄는 포용과 인내와 열린 소통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당선자가 임기 내내 아래 시인의 말을 머리와 가슴 속에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Audre Lorde(1934-1992)라는 미국의 흑인 여류 시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It is not our differences that divide us. It is our inability to recognize, accept, and celebrate those differences.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축하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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