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 시사
  • 입력 2022.01.13 17:36
  • 수정 2022.01.14 11:09

'멸공' 논란속 국민을 속이려 한 '거짓 언행'

[언어학자가 본 한국 대선 동향과 전망]
윤석열 후보의 거짓변명을 걱정하는 이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멸공' 논란이 대선 정국 속 정치 공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공방에 방아쇠를 당긴 이는 윤석열 후보였다. 윤 후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신세계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입하는 사진을 올렸고 이어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나경원 전 원내대표 역시 비슷한 취지로 먹거리 사진을 올리면서 '멸공' 릴레이 인증이 벌어졌다. 이후 논란 흐름의 중심이 정용진 부회장을 규탄하는 목소리와 함께 신세계 그룹 관련 매장과 스타벅스 불매 운동으로 옮겨가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사람은 윤 후보다. 윤 후보가 이 논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확대한 중심인물인데 정작 불매 운동 흐름에 묻혀서 이 일로 엿볼 수 있는 윤 후보의 심각한 자질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다. 

그는 왜 거짓변명을 할까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이후 논란이 일자 기자들의 질문에 "집에서 가까워서,“ ”멸치 육수 내려고 샀을 뿐,“ ”콩국 먹으려 콩을 샀을 뿐“이라고 응답했다. 자신의 언행은 정 부회장이 일으킨 논란과 상관없이 일상의 필요에 따라 한 일일 뿐인데 왜 소란을 피우냐고 기계적인 반문을 했다. 옳은 언행이었을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기 쉽지만, 보통 화자와 청자 간 대화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경험과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언어학의 담화분석(discourse analysis) 분야에서는 이것을 '배경 지식과 공유된 믿음'(background knowledge and shared belief)이라고 부른다. 모든 대화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배경적 요인이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 반드시 상황적 맥락이나 사건의 흐름 속에서 말을 하지, 그 말 자체만을 자기 혼자 우연히 독립적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화자는 흐름과 맥락 속에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대화의 상대인 청자와의 교류와 공유한 경험, 사건의 흐름 속에서 말을 하게 되며 청자는 그 맥락적 영향 속에서 화자의 말을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 후보는 모든 사람이 명백히 공유하고 있는 배경 사건과 그 이후 흐름의 맥락을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의 언행이 일상에서 생긴 우연일 뿐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최소한의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의 모든 언행이 ‘멸공’ 논란 사건 흐름의 맥락과 완전히 독립된 순수한 우연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①왜 굳이 수많은 장소들 중 집에서 다소 거리가 먼 신세계 이마트를 선택했고 ②왜 ‘멸공’을 상징하는 멸치와 콩을 샀으며 ③ 왜 굳이 산 것을 사진까지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태그를 달아 올려야 했는지. 고도의 상징적 의도성이 뻔히 읽혀지는 상황에서 이 모든 언행에 대해 무고하다고 항변해도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억지로 우연을 가장해서 변명을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산 것에 대한 이념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TV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산 것에 대한 이념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TV

대통령의 도덕성은 정직에서 나온다

여기서 필자가 더 주목하는 것은 윤 후보의 억지 변명에 드러난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 문제이다.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 대통령은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도덕성의 핵심 가치는 '정직'이다. 정직하지 않은 지도자는 신뢰할 수 없다.

이런 식의 기만적인 변명은 기계적인 거짓말 보다 훨씬 더 나쁜, 청자를 철저히 무시하는 정직과 신뢰 파괴 언행일 뿐이다. 윤 후보는 ’1일 1망언‘이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 거의 매일 기이한 언행이 비판과 성토의 단골 화두가 되어 왔다. 그때마다 궤변에 가까운 억지 논리와 변명으로 그 순간의 위기를 벗어나곤 했다. 그래도 이제까지는 억지 대응 내용과 논리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언행의 '화용적 맥락'(pragmatic context) 속에서 반응을 보여 왔다.

이번 거짓변명은 국민을 속이려한 것

이번은 또 다른 차원의 일탈적 언행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이들이 명백히 아는 배경적 맥락을 철저히 무시하고, 개연성이 거의 없는 우연을 가장한 주장으로 억지 변명을 고집하는 태도는, 배경 사건과 흐름의 맥락 속에서 그의 언행을 주시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청자인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기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억지스러움을 애써 외면하며 인정하지 않고 우기는 식의 대화로 논란만 가중시키는 화법은 청자인 국민들을 화나게 하는 매우 비생산적인 대화 방식이다. 또한 억지 항변으로 모든 사람의 진을 빼며 소모적 언쟁을 유발하는 것은 공해에 불과하다. 이것은 결코 나라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대통령 후보가 화자로서 취할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더구나 불과 일주일 전에 윤 후보는 지지율이 급락하자 뼈저린 반성의 태도를 보이며 ”이제는 제가 하고픈 말이 아닌 국민들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윤석열이 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반성의 말을 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그가 국민들이 결코 원하지 않는 백해무익한 논란을 자초하는 모습은 퇴행적이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뻔뻔한 언행을 보면 그의 말에 근본적인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윤 후보는 대통령 후보다. 그가 만일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국정 현안을 두고 크고 작은 지적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그때 이런 식으로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언행을 보인다면, 과연 비판들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이고 승화시켜서 국정을 조화롭게 이끌 수 있을까? 이제까지의 그의 언행 패턴을 볼 때 윤 후보는 권력과 정보력을 동원해서 자신을 향한 비판을 억지 논리와 궤변으로 대응하고 소모적 논쟁으로 사건의 본질을 덮으려 할 것이다. 그 결과 중요한 국정 현안들이 겉돌고 난맥상을 보일 것이라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재민이 헌법 정신의 핵심 기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 자기를 뽑아 주는 국민을 무시하고 속이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대통령 후보 기본 자격이 있을까? 윤 후보는 '멸공' 주장을 왜 정직하게 설명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할 것이다.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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