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전우용 역사학자
  • 시사
  • 입력 2022.08.17 15:30
  • 수정 2022.08.18 14:49

무오류의 군주와 기군망상죄

[전우용의 역사에서 읽는 지혜]
윤대통령에 속았다? 우리가 몰랐단 말인가
국민들이 나쁜 선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독일국민, 히틀러를 선출한 오류와 비슷해
'주권자 국민' 속인 간특한 간신들 멀리해야

국민은 무오류인가

지난 5월,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재자이자 부정축재자였던 마르코스와 이멜다 부부의 아들이 당선됐다. 국내 언론사들은 이 사건에 대해 “독재자의 아들‘이 당선됐다며 필리핀 국민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투로 보도했다. 마르코스 2세 대통령의 당선 책임을 그의 상대 후보에게 돌린 언론사는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는 야당이 된 민주당이나 그 후보였던 이재명의 책임이 크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며칠 전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은 '저소득 저학력층 중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고 말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정의당의 비대위원장은 "시민과 언론 탓에 나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민주 정치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인식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이 논평의 전제는 '다수 시민의 결정은 언제나 옳다'이다. 그런데 필리핀 국민은 어리석고 한국 국민은 현명하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될 수 있는 명제인가?

1894년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구병입경 진멸권귀(驅兵入京 盡滅權貴)', 즉 '병사를 몰고 서울로 쳐들어가 권세있고 부귀한 자들을 전부 죽여 없애겠다'는 과격한 구호를 내걸었으나 권귀 중의 권귀인 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군주제 하에서 왕을 직접 비난하는 것은 대역(大逆)이자 금기였기 때문이다. "우리 임금은 어질고 영명하신데, 주변의 간신들이 문제"라는 말과 생각은, 군주제 시대의 상식에 따른 상투적 수사법이었다. 사실 세종이 황희를 재상으로 삼은 것이지 황희가 세종을 왕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연산군이 임사홍같은 간흉(奸凶)들을 등용한 것이지 임사홍 무리가 연산군을 왕으로 옹립한 것도 아니다. 영명하고 어진 군주의 짝이 명신(名臣)이고 방탕하고 포악한 군주의 짝은 간신(奸臣)이다. '간신을 가까이하는 어진 임금'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당대인들도 어질고 영명한 군주는 간신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왕을 바꿀 수는 없었으니, 주변의 간신을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 '간신'의 스틸 컷.
영화 '간신'의 스틸 컷.

민주정에서 국민을 속인 죄  

더러는 자기 과오를 깨닫고 반성하는 군주도 있었다. 그런 군주가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떠넘길 때 적용하는 죄목이 '기군망상죄(欺君罔上罪)'였다. '군주를 속이고 윗사람을 농락한 죄'라는 뜻이다. 간신들의 감언이설에 속은 사람도 자신이요, 간신들이 권하는 대로 망녕된 짓을 저지른 것도 자신이건만, 군주는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간신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만 해도, 좋은 군주라고 할 수 있었다.

주권자가 군(君)에서 민(民)으로 바뀐 정치가 민주정이다. 간신에게만 책임을 묻고 군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던 오랜 관행과 문화는 군(君)이 민(民)으로 바뀐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역사의 발걸음은 본디 더딘 법이다. '군주는 어질고 영명한데 간신들이 문제'라는 생각은, 오늘날 '국민은 언제나 옳은데 정치인들이 문제'라는 생각으로 대체되었다. 수많은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이 '국민의 선택은 무오류이며 절대적'이라는 전제 하에 자기 주장을 편다. 그들의 언설(言說) 안에서, 국민은 절대주의 시대 전제군주와 같은 신성 불가침의 존재다. 군주에 대한 어떤 비판도 용납되지 않았던 체제가 '절대군주제'였으니, 현대 한국의 정치 체제는 가히 '절대민주제'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국민'은 신도 성인도 아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선할 때도 있고 악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방탕하고 때로는 성실하며, 탐욕에 눈이 뒤집혀 잘못을 저질렀다가도 곧 반성하고 성찰하는 보통사람이다. 집합명사 '국민'을 단일한 인격체로 상정하더라도, 정체성이 수천만 개로 분열된 '이상한 인간'일 뿐이다. '그'는 세종이 되기도 하고 연산군이 되기도 하는 일관성 없는 주권자다. '그'가 세종처럼 되려는 의지가 강할 때는 세종의 치세(治世)가 되고, 연산군처럼 되려는 욕망이 강할 때는 연산군 치세가 된다. 이런 국민이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한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당대 최상의 민주정치를 실현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국민'이 선거로 뽑은 사람이 히틀러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국민은 어질고 현명했는데, 히틀러 혼자 국민을 속이고 폭정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는가?

군주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절대군주제'가 나쁜 군주제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무오류성을 전제하는 '절대민주제'도 좋은 민주제가 아니다. 집단으로서의 '국민'도 오류를 범할 수 있고 나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성찰하는 국민'이 될 수 있다. '성찰하는 국민'이라야, 민주주의를 좋은 제도로 유지할 수 있으며, 더 나은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은 누구나 탐욕스럽고 방탕하며 잔인하고 악랄한 쪽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군주제 시대에는 성찰하지 않는 주권자가 폭군이었으며, 폭군이 선택한 신하들이 간신(奸臣)이었다.

대선후보시절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광주시민들은 윤 후보의 헌화·분향을 반대하며 묘역 입장을 가로막았다. 사진=연합뉴스.
대선후보시절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광주시민들은 윤 후보의 헌화·분향을 반대하며 묘역 입장을 가로막았다. 사진=연합뉴스.

국민들, 윤대통령에게 속은 것 분명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취임 100일도 안 되어 30%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3월의 대통령 선거때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던 사람의 반 정도가 자기 선택을 후회한다는 의미다. 대선 직전 안철수씨는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하면 1년 안에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손가락 자르고 싶다는 사람은 벌써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무슨 죄인가? 지성(知性)과 양심(良心)의 문제를 '도장 찍는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짓이다.

윤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속였다는 말인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그는 투명할 정도로 자기 본심과 본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주가 조작, 논문 표절, 허위 경력 등 부인과 관련한 의혹,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TV 토론에 나오거나 대선 후보 캠프에서 무속인이 활동하는 등 그가 무속(巫俗)에 크게 의존한다는 의혹, 검찰 권력을 사유화하여 정치적 의도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사권을 편파적으로 행사했다는 의혹, 국정 전반에 관해 무지하고 국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평판, 기득권 세력의 네트워크에 함몰되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태도 등에 관한 정보는 모를래야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넘쳤다.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놓고서는 '속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우리 국민이 자기 자신에게 매긴 점수라고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은 주권자인 동시에 피치자(被治者)인 모순적 존재다. 주권자 국민이 연산군처럼 탐욕스럽고 방탕하며 잔인하면, 피치자(被治者) 국민은 폭정(暴政)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자기는 연산군처럼 살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세종 치세 같은 태평성대를 바라는 것은 말 그대로 망상(妄想)일 뿐이다. 군주제 시대에는 폭군을 갈아치울 수 있었지만, 민주제 시대에 국민을 갈아치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좋은 정치를 원한다면 주권자 국민 스스로 성찰하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

반성하고 교정하는 국민이어야

군주제 시대 군주의 반성은 '기군망상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벌로 이어졌다. 후회하는 국민은 차라리 양심적이다. 대선 전 윤석열 후보를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추켜세우며 윤 후보가 집권해야 나라가 좋아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지식인과 언론인들 중 자기 잘못을 시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오히려 '정부를 쇄신하면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쇄신'이라는 말을 쓰는가? 새 자동차를 구입한 고객에게 "엔진과 미션만 교체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는 자동차 세일즈맨이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옳을까? 그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사람이다.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후회도, 교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반성도 다 무의미하다. 앞으로 차마 보지 못할 꼴을 보고 차마 겪기 어려운 일을 겪게 되더라도, 국민 다수가 그걸 반성과 자기 교정의 계기로 삼기만 한다면 민주주의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반성과 교정은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먼저 간특하고 교활한 언사로 주권자 국민을 속인 '기군망상'의 간신들을 멀리 해야, '반성하고 교정하는 국민'이 될 수 있다.

※ 필자인 전우용 교수는 우리 시대의 역사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 현안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역사학자다. <우리 역사는 깊다>, <내 안의 역사>, <민족의 영웅 안중근>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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